가수 장미화(본명 김순애)가 이혼 후 100억대 빚을 직접 갚아야 했던 이유를 밝혔다.
3월 27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고백한 장미화의 모습이 담겼다.
장미화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공개했다.
장미화는 “원래 우리 가족은 7자매였다. 그런데 위로 여섯 명 언니가 폐렴으로 다 세상을 떠났다. 폐렴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만 살아남아 무남독녀가 됐다”고 밝혀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장미화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상처를 고백했다.
장미화는 “내가 5살 때 6.25 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와 생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수소문해서 아버지를 찾았는데 이미 가정을 따로 꾸리셨더라. 나를 봐도 무뚝뚝하게 대하셨다. 그게 무척 상처가 됐다”고 토로했다.
장미화는 “콘테스트에서 1위를 한 후에도 날 인정하지 않으셨다. 내게 ‘대학은 가야지’라고 혼내셨다. 결국 대학게 갔고, 에드포 싱어 활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울먹이는 장미화의 모습이 시청자의 안쓰러움을 샀다.
장미화는 가수 데뷔 과정을 공개했다.
장미화는 “신중현 씨가 날 발굴한 후 1966년 여성밴드가 됐다. 김 시스터즈 매니저가 신중현 씨에게 ‘장미화 중심으로 해외진출 여성밴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구성된 밴드가 레이디 버드였다”고 밝혔다.
장미화는 “1966년 밴드를 결성한 후 6년간 해외 활동했다. 21살 때였는데 내가 대한민국 최초 해외진출 여성 밴드였다. 동남아시아, 캐나다, 미국을 모두 돌았다”고 설명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장미화는 귀국 후 밤업소에서 겪었던 고난에 대해 고백했다.
장미화는 “취객들이 먹다 남은 안주를 내게 던졌다. 나중엔 내 정신이 약해지더라. 당시 ‘그냥 결혼해서 현모양처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로 33살에 결혼을 하며 은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미화의 결혼 생활은 상상처럼 순탄치 않았다.
장미화는 “결혼 후 3년 동안은 재밌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실패와 임신 후 불화가 생겼다. 양육권을 갖기 위해 100억원대 빚을 내가 갚았다”고 털어놨다.
장미화는 “하루에 12군데 밤업소를 뛰었다. 저녁 6시 30분 카바레를 시작으로 스탠드바, 나이트클럽을 돌며 새벽 4시까지 일했다. 그때 자존심이 없어졌다. 어린 아들을 키우고,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회상했다.
장미화는 방송 말미 어린 시절 함께 가수를 꿈꿨던 언니와 눈물 속에 재회했다.
장미화는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장미화의 강인한 모습이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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